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 라면회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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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09:00
깔깔슈렉
1980년대 초 풍한방직의 사장인
김정우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1952년에 시작된 방직 및 의류 회사인
풍한방직은
1960년대까지 방직업계에서
2등 자리를 고수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70년대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에 위기를 겪게 되었고
심지어 부도 처리까지 났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의 창립자인 김영구 회장이 부동산 사업에 일가견이 있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회사가 매각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김영구에게 회사를 물러받은 아들 김정우는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방직업 대신 새로운 업종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었던 것이다.
그 뒤 김정우는 결론을 내리는데
바로 라면 회사로 업종을 변경하는 것 이었다.
당시 라면 회사였던 삼양이 전성기를 달리며 떼돈을 벌고 있기도 했고
정부가 70년대에 존재했던 라면에 대한 가격 규제를
풀기도 했기에
김정우가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게 1984년 청보식품이 창립되었고
동시에 첫 제품인 영라면이 출시되었다.
당시 청보식품은 자신들이 후발주자인 것을 알았기에
마케팅에 큰 신경을 썼는데
바로 당시 인기 개그맨이었던 이주일을
광고에 출연시킨 것이다.
그리고 네네치킨이 유재석 덕분에 인지도를 얻은 것처럼
영라면도 꽤 괜찮게 팔렸다.
하지만 영라면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맛이 드럽게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먹어본 사람들은 국물은 싱거운데 염분은 많아서
목이 마른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며
면은 또 푹 끓였는데도 설익은 듯한 식감이 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영라면의 판매량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청보식품은 이를 이겨내고자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바로 곱빼기 라면이었다.
곱빼기 라면은 이름 그대로 영라면보다 많은 양인 150g으로 출시했는데
이는 당시 라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광고의 경우 앞서 말한 이주일에
스타 가수 김수철까지 합세했으나
정작 맛 자체는 영라면과 똑같았기에
판매 실적은 여전히 부진했다.
이렇게 상황이 안 좋아질 때
청보식품은
뜬금없이 군납업체에 선정되어
군대에 라면을 공급하게 되었는데
이렇다보니 당시 대중들 사이에선 청보를 영부인이나
그녀의 친척이 운영하는 거 아니냐는 등의 얘기가 나돌았고
기업 이미지가 안 좋아졌고
동시에 기업 상황도 더 안 좋아졌다.
다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며
군납업체에 선정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청보식품은 뜬금없이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해
청보 핀토스를 창단했는데
처음 참가한 1985년 후기리그에서
최악의 팀상황에서 4위로 선전했으나
(당시에는 6팀이었음)
1986년엔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 덕분에
간신히 최하위를 면했고
1987년엔 기어이 최하위를 차지하며
라면과 야구 모두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고
혹자는 야구도 못하는 것들이 라면이라고 제대로 만들겠냐는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아니 근데 왜 야구팀을 인수한 겁니까.
아 그게
삼미 회장이 고등학교 후배여서...
암튼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던 청보는
겸사겸사 로고도 바꾸고
약 20개의 제품을 출시했으나
다 실패했고
그나마 열라면이 특유의 매운맛 덕분에
평가가 좀 나았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다.
게다가 다른 라면 회사들의 기세도 막강했는데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삼양과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4연타로 1등 자리를 노리던 농심에
도시락과 비빔면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던 팔도까지.
청보는 낄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청보식품은
1987년 오뚜기에게 인수되었고
청보 핀토스도 태평양 돌핀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뚜기는 청보의 열라면을 살려냈으나
그게 청보가 원조였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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